LG산전이 상용화에 성공한 이더넷 통신기술 RAPIEnet을 국제표준으로 채택한 것은 의미있는 이정표다. 와이브로, DMB 등 IT 분야에서는 몇 차례 국내기술이 국제 표준으로 채택되기는 했으나 전기관련 기술이 채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 표준에 둔감하고 대응이 미흡한 전력계 토양에서 이같은 쾌거가 일궈진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다수 기업이 표준화 관련 업무를 비생산적인 활용으로 여겨 배척하거나 단기간 내 효과가 나오기 힘든 표준화에 투자를 꺼려 전문인력이 길러지지 않는 등 인프라가 취약한 것이 전력계 현실이다. 이같은 어려움을 딛고 국제표준을 따낸 것은 표준을 주도한 LG산전은 물론이거니와 전력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표준 채택 노력이 시간 낭비, 인력 낭비가 아닌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LG산전의 국제표준 채택은 국내시장에서 외국산 제품의 확산을 막아 국내시장을 보호하는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국내 시장의 수성(守成)에 그치지 않고 해외시장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놓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이번 쾌거는 우리나라가 세계 산업용 네트워크 시장에서 강자로 군림하는 초석 역할을 할 것이다. 특히 기술과 표준에 관한한 우리보다 한발 앞서있는 독일 일본 미국 등 강대국과 맞붙어 당당히 국제표준을 따낸 것은 국제표준이 도달 못할 신기루가 아니라 노력과 대응 여하에 따라 성취해낼 수 있는 결과물이라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표준이 기업의 생사는 물론 국가 흥망을 좌우하는 화두로 떠오르면서 기업간 국가간의 치열한 표준경쟁은 ‘총성없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1등이 모든 것을 갖는 ‘승자독식’의 표준전쟁 영역도 IT중심에서 산업계 전분야로 급속히 확산되는 추세다. 기술이 앞서도 표준을 선점하지 못하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정설처럼 자리잡았다. 표준이 기술개발과 시장을 선도하면서 표준을 선점하지 못하면 기술개발과 생산라인에 들어간 막대한 투자비를 회수할 수도 없고 기술자체가 시장에서 사라진다. 전력계 CEO들도 표준을 둘러싼 세(勢)경쟁에서 밀리면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것을 재인식해야 할 때다.

전기관련 기술의 세계표준 채택이 전력 기업들로 하여금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국제표준의 정비와 제정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지식경제의 속도 경쟁에서 기술에 뒤쳐지면 생존 자체가 어렵다. 표준이 중요하다지만 원천기술 없이 국제표준을 추진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원천기술과 표준은 향후 기업의 미래를 담보하는 열쇠다. 전통기술에 IT기술의 접목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전력계에도 창조적인 기술개발과 표준 제정의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정부도 전력 기업이 국제표준화 활동에 적극 나서도록 배려하고 지원해야 할 것이다. 표준화 관련 기관과 대학, 기업이 유기적으로 네트워킹하고 협력할 수 있는 여건과 시스템을 조성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표준 전문가 풀도 재정비해 실질적으로 국가와 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표준화 관련 제도와 시책을 체계적이고 총체적으로 운영할 것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