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스파이, 안전지대는 없다
경쟁이 치열해 질수록 산업스파이는 기승을 부린다. 산업스파이의 수법도 날로 진화하고 있다. 시설 잠입, 문서 절취나 복제, 도청, 녹음이나 타킷으로 삼은 기업의 임직원을 포섭하기 위한 미인계, 매수, 납치, 협박, 스카우트 등은 이미 널리 알려진 고전적인 수법. 근래에는 합법적 인수, 경영컨설팅이나 기술자문, M&A를 가장한 경영실사, 매개회사 이용, 위장취업, 기술협력·공동연구, 해킹 등과 같은 고도의 전략이 동원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접근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도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한 것을 알기 이전에는 피해여부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첩보영화의 한 장면 같은 기업 간 정보전쟁은 이제 현실적인 이야기다. 산업스파이 세계에서 더 이상 안전지대는 없다. 이번 회에는 산업스파이들의 수법에 대해 알아본다.

◆  매개회사
매개회사를 통한 정보 절취는 비교적 신종수법이라고 할 수 있다. 타킷으로 삼은 기업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 또 다른 기업(매개회사)을 포섭한 뒤, 매개회사를 통해 타킷을 파고드는 우회적 전술이 돋보이는 수법이다. 실제로 국내 벤처기업과 협력관계에 있던 모 반도체회사가 매개회사를 통해 기술을 도둑맞기도 했다. 산업스파이행위가 발각되더라도 의뢰기업은 “우리는 (매개)회사와 기술도입 계약만 했지, 산업스파이행위를 지시한 적은 없다”면 법적으로도 대응할 수가 없다.

◆ 사설 정보업체
산업정보를 노리는 다국적 사설 정보업체들도 은밀히 활동 중이다. 이들은 컨설팅업체나 합작 법무법인 형태의 사무실을 차려놓고 국내 기업의 특허침해 사례, 외국기업 지사의 비리 조사 등 다양한 정보활동을 벌이고 있다. 겉으로는 합법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의뢰기업이 원한다면 언제든 산업스파이가 될 수 있는 경계대상 1호가 바로 사설정보업체이다.

◆ 회사 참관
산업보안에 자신이 있는 기업들은 과감하게 회사 내부를 공개하기도 한다. 기밀자료가 저장된 컴퓨터나 금고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안심하기엔 이르다. 회사의 먼지까지도 기밀자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장에서도 얼마든지 유용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다. 옷자락에 슬쩍 묻혀가는 화학물질을 분석하면 원하는 자료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전문가들 중에는 냄새만으로 물질의 배합비율을 알아내기도 한다. 신발 밑에 붙여가는 금속가루에도 정보가 담겨있다.
업계에서는 이미 전설이 된 이야기 하나.일본의 한 금속연마제 제조사 직원이 미국 경쟁업체를 방문했을 때 손수건에 먼지를 닦아 온 적이 있었다. 일본 업체는 이 먼지를 분석해 경쟁업체 연마제의 성분을 알아냈다고 한다. 
경쟁사에게 섣불리 회사 참관을 허용했다가는 상상도 못했던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

◆ 도청이나 몰래카메라
도청은 누구나 아는 방법이지만 그 위력은 아직도 유효하다. 기술의 발달로 도청이나 도둑촬영은 점차 쉽고 간편해지고 있다. 표적이 되는 인물의 집이나 사무실 구석에 초소형 장치를 숨겨놓는 것만으로도 며칠간의 대화를 빠짐없이 녹음 또는 촬영할 수도 있다. 출장 중인 중역들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 비행기 좌석 밑이나 호텔방, 자주 가는 술집에 도청·촬영기기를 장치하기도 하고, 구두미화원을 매수해 기업간부들의 구두 굽 속에 도청기를 삽입하기도 한다. 기업을 참관하고 떠나며 건네는 기념품 속에도 도청장치가 되었을 수도 있다. 무심코 큰 소리로 전화 통화를 함으로써 정보가 유출되기도 한다.

◆ 해킹
기업-공공기관의 전산망에 침투, 정보를 빼내거나 삭제하는 해킹도 산업기밀을 빼가는 주요한 수단이다. 특히 사람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면서 사이버 용병을 동원한 해킹이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안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사이버 테러는 정보절취 뿐 아니라 해당기업의 정보망을 파괴하기도 한다.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컴퓨터에 수록된 정보를 파괴하는 논리폭탄, 전자기장을 발생해 자기기록을 훼손하는 고출력 전자총, 악의적 내용의 전자우편을 무차별 살포하는 스팸, 토론방에 기업이나 경영진에 대한 악성루머를 유포하는 플레임 등이 여기에 속한다. 특히 플레임은 해당 기업의 주가와 신인도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 기타
▶ 미인계 - 미인계는 시대를 초월해 사용되는 스파이 기술로 꼽힌다. 술집에서 만난 여성이나 우연히 알게 된 여인과 가까이 지내다 보면 아무런 경계심 없이 회사의 업무에 관해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여성이 산업스파이이거나 목적을 가진 집단에 포섭되었다면 그가 무심코 했던 말은 고스란히 경쟁기업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 미인계에 넘어가 기업정보를 유출한 사례는 상상외로 많이 있다.
반대로 타킷이 되는 회사의 여직원을 유혹하는 ‘로미오 수법’도 있다. 특히 고위직의 여비서는 산업스파이들이 노리는 유혹대상 1순위다.
▶ 식당이나 술집을 노린다 - 같은 회사 직원끼리 회식자리에서 술에 취해 떠드는 말을 노리기도 한다. 부서회식은 대부분 같은 식당에서 하는 것이 보편적인 관례. 또 회식자리라지만 나누는 이야기들은 업무적인 것이 많다. 산업스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식당이나 술집 종업원을 매수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도청기를 설치하거나 대화내용을 입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술집의 바텐더나 동석한 호스티스도 언제든지 그 자리에서 나온 대화내용을 타인에게 넘길 수 있다.
▶ 휴지통을 뒤져라 - 무심코 버리는 서류에도 정보가 담겨있다. 서류분쇄기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웬만한 조각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원래의 모습으로 짜 맞출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업의 기밀에는 무관심해 보이는 청소원을 매수한다면 휴지통의 내용물을 확보한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