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전력산업 대 위기: 석학의 제언>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전력경제 창간 17주년 특별 칼럼)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1961년 기존에 있었던 전력 3사를 통합하여 한국전력(주)를 설립하고, 1982년 제정된 한국전력공사법으로 인해 공기업으로 변신한 한전은 2023년 올해, 설립 이래로 가장 혹독한 시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한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력산업 전체가 지난 60여 년 동안 경험한 적이 없는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한전은 작년에 대한민국 전력사(電力史)에서 유례가 없는, 다시는 경험하지 않길 바라는 영업적자 32.6조원, 부채 287.3조원, 부채비율 459%와 같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올해까지도 이러한 상황은 지속되어, 1분기 영업적자는 6.2조, 부채비율은 535%까지 치솟았다. 2021년 2분기 이래 8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보이고 있으며, 하루 이자만 116억원을 지불하고 있다. 물론 ’21년에도 영업적자 5.8조원, 부채 145.8조원, 부채비율 223% 실적을 보여 몹시 실망스러운 수준이었지만, 작년과 올해 1분기의 수치는 처참을 넘어 처절한 지경이다. 한편, ‘20년을 살펴보면, 영업이익 4조원, 부채 132.5조원, 부채비율 187% 정도로 경영 환경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건만, 불과 2년 만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그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진단하여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전력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혁신과 개혁을 빠르게 시작해야만 한다.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전력산업이 현재와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였다는 것만으로도 현 전력산업 구조와 시스템이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1년부터 본격화된 글로벌 에너지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변화된 국제정세로 인해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지금과 같은 국제 에너지 시장 상황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다. 지금 변하지 않으면, 작년과 같은 상황은 언제든지 반복되어 일어날 것이고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요금을 적정 수준으로 인상하고, 비용을 줄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해서 현재의 전력산업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전력산업 자체의 변화와 혁신 없이는 5년 전, 10년 전과 같은 시절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현재의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2001년 한전으로부터 발전을 분리하여 6개 발전자회사를 설립하고, 전기사업자 사이의 거래를 전력거래소가 담당하게 한 20여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또한, 수송을 담당하는 송·배전사업은 한전이 전적으로 맡고 있다. 전력을 구매하여 수송하고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역할은 공기업인 한전이 전담하며, 발전사업자의 전기 판매는 공공기관인 전력거래소에만 일임하는 경직적인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즉, 소매와 수송은 한전, 도매는 전력거래소가 독점적으로 관리하는 셈이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소매를 담당하는 한전은 전기요금에, 전력거래소에 전력을 판매하는 발전사업자는 도매전력시장 가격(SMP)에 목을 매고 있다. 전 국민과 정치권도 한전의 전기요금만 쳐다보고 있다. 전력산업의 모든 참여자가 적시에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천수답(天水畓)에 기대고 있는 형국이다. 전력산업 어디에도 소비자의 선택권은 찾아볼 수 없으며, 발전회사와 판매회사 사이의 계약과 같은 위험 관리 방안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기요금은 정부와 정치에 의하여 규제되고 있으며, 도매전력시장의 SMP를 결정하는 전력시장규칙 또한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낮은 전기요금에 익숙해진 소비자는 가격에 반응하는 수요 조절이나 에너지 효율에 대한 필요성을 잊은 지 오래이며, 점점 전력회사에 의존하게 되었다. 에너지원의 93%를 해외로부터 수입하고, 에너지 수입액이 1,900억$에 달하여 효율적 에너지 사용이 절실한 우리나라의 경제 구조에서 에너지 효율 수준은 OECD 국가 가운데 꼴찌로 떨어지게 되었다. 중앙의 전력공급에 의존하다 보니, 자가발전의 비율은 5% 수준으로 일본의 1/4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자칫 중앙으로부터의 전력 공급에 차질이 발생하거나, 요금이 상당 오르게 되면 대응 수단이 전무한 소비자는 낭패를 당하게 된다. 

 전력거래소가 운영하는 도매전력시장의 비효율성도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 발전사업자는 생산한 전기를 거래소에만 판매할 수 있고, 발전기의 급전 순위는 효율과 연료가격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급전을 우선적으로 받기 위하여, 발전사업자들은 경쟁적으로 해외 신기술을 도입하였다. 지난 20여년간 우리나라 도매전력시장은 해외 가스터빈 제조사들의 신기술 실증 현장으로 전락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모델을 성공적으로 실증한 해외 제조사들은 전 세계로 판로를 넓혔다. 만약, EU나 북미와 같이 발전사와 판매회사(소비자) 사이의 장기 전력계약이 허용되었거나, 발전/판매 겸업이 존재했더라면 이 정도까지는 아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스와 수소터빈을 국산화하고 있는 지금 도매전력시장을 계약과 가격입찰 기반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후발주자인 국내 가스터빈 기술의 시장 진입은 요원하게 된다. 또한, 육지 전력시장을 하나로 취급하다 보니, 가장 비싼 수도권 발전기의 한계가격(SMP)이 공급이 넘치는 호남과 영동 지역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왜곡된 투자 신호를 보내고 있다. 공급이 넘치는 지역의 가격은 낮아져야 하지만, 전국에서 가장 비싼 가격이 여전히 적용되니 특정 지역으로의 공급 쏠림 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이른바 적절한 위치에 신규 발전설비 투자를 유인하거나 지연시키는 가격이라는 신호등이 고장난 것이다. 수도권과 같이 공급이 필요한 지역에는 푸른 신호등이 켜져야 하는데 붉은 신호등이, 호남과 영동 같이 공급이 넘치는 지역에는 붉은 신호등이 켜져야 하는데, 푸른 신호등이 켜지고 있다. 20여 년 전과 같이 송전망을 즉시에 건설할 수 있으면, 특정 지역에 공급이 집중되어도 큰 문제는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송전망 건설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극단적으로 낮아진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도매전력시장의 지역적 가격 미제공은 땅값이 싸고 자연 여건이 좋은 지역에 발전 과투자를 불러일으키고,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송전망 건설의 지연으로, 공급이 넘치는 지역의 신재생과 발전설비의 출력제어는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 고리를 형성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출력제어를 당하는 사업자의 불만은 치솟고, 한전은 지역적 가격 신호를 제공하지 못하는 거래소를 탓하고, 거래소는 송전망 건설이 지연되는 한전을 탓하고 있는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력산업의 미래 청사진을 제공하는 탄소중립 기본계획, 전력수급 기본계획, 천연가스 수급계획, 신재생계획 등 정부의 에너지 계획은 실용적인 접근보다는 명분에 휩싸인지 오래되었다. 신재생, 수소, 에너지저장(ESS) 등 생산단가가 매우 높은 발전원의 소요 비용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한전에 무차별적으로 청구되고 있다. 한전 또한 소비자의 소비 패턴과 취향을 고려하는 다양한 요금제 개발과 전력망의 개방을 통한 경쟁 촉진에는 뒷전이다. 우리나라 전력산업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현재의 위기는 전기요금 인상만으로는 절대로 극복할 수 없다.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와 경쟁 촉진, 도매전력시장의 근본적인 개혁, 전력산업 전 영역에서의 경쟁 촉진을 통한 비용 절감, 명분보다는 실리는 추구하는 에너지 정책의 구현으로만 가능해질 것이다. 다시 원점에서 현재의 전력산업 전체를 재구성해야만 한다. 약간의 요금인상이나 비용 절감만으로는 파국에 이른 전력산업을 소생시킬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