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전력경제신문 창간 16주년 석학의 제언
<새 정부가 풀어야 할 전력정책의 첫 번째 과제는>
글로벌 전력시장 역사상 최악 상황 전개
수급 위험·돌이킬 수 없는 한전 손실 초래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올해 들어 글로벌 에너지 산업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퍼펙트 스톰’을 온 몸으로 맞고 있다.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 연료 가격이 급등을 물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新냉전, 자원 민족주의로 자원 확보 비상이 지속되고 있다. 또한, 팬데믹 완화로 인한 수요 회복, 지구촌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폭염, 혹한으로 냉난방 수요의 폭증, 작년에 경험한 북해 지역의 풍력발전 급감, 극심한 가뭄으로 수력발전 공급력 저하 등 수요와 공급의 불확실성이 극대화되는 大혼돈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20년 超저유가와 저렴한 천연가스 구매자 시장에서 채 2년도 되지 않아 가격을 불문하고 물량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당장은 개인과 기업의 생존을 위한 에너지 안보에 집중할 시점이다. EU로부터 시작되어 작년 지구촌을 흔들었던 탄소중립 신드롬의 기억이 까마득하다.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붕괴는 자원의 자급률이 낮고,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지 않은 전력시장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일례로 EU는 작년 하반기부터 천연가스 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도매전력시장 가격이 무려 3배 이상 올라 MWh당 300불에 이르고 있다. 러시아 천연가스에 의존적인 독일은 도매전력시장 가격이 3.3배나 올랐으며, 소매 전기요금은 규제로 인하여 41센트/kWh에 머무르고 있다. 전력을 인접국에서 상당 수입하고 있는 이태리는 도매시장가격이 3.6배, 소매 전기요금은 80%나 인상되어 56센트/kWh에 달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높은 천연가스 의존도로 EU 도매전력시장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소매 전기요금도 독일, 이태리, 스페인 등은 kWh당 40∼50센트 정도로 우리나라의 4∼5배에 달하고 있다. 그나마 영국의 전기요금은 kWh당 30센트, 프랑스는 20센트 내외에 머물러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EU 국가들의 소매 전기요금은 규제로 이 정도에 머무르고 있지만, 그 피해는 판매회사들의 파산으로 전가되고 있다. 전기요금을 도매시장 가격대로 인상하면 소비자가, 요금을 규제하면 판매회사가 직격탄을 맞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여 있다. EU는 신재생과 원자력의 확대, 북미와 중동산 LNG 수입 등의 대책을 내 놓고 있지만, 당장의 가격 안정화를 가져오기에는 역부족이다. 만약, 이번 여름에 폭염이 상당 기간 지속된다면 사태는 훨씬 심각해 질 수 있다. 천연가스를 자급자족하며, 신재생, 원자력, 석탄 등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는 미국의 도매전력시장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도매전력시장 가격이 2배 정도 오르긴 했지만 그 수준은 MWh당 60불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전기요금의 상승도 매우 제한적이다. 유럽발 천연가스 파동은 석탄 파동으로 전파되어 가격은 3배 이상 올랐으며, 중국과 인도네시아는 석탄의 대외 수출을 중단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러시아 석탄 수출도 EU의 제제로 불확실하다. 작년 하반기, 석탄 부족으로 대규모 대정전을 겪은 중국과 인도의 악몽이 떠오른다. 

작년 우리나라 발전량의 구성비는 석탄 34%, 천연가스 29%, 원자력 27%, 신재생 7% 나타났다. 전량 수입하며 가격이 폭등한 석탄과 천연가스의 비중이 60%를 상회하는 반면, 에너지 자립도가 높은 원자력과 신재생은 40%에 못 미치고 있다. 그나마 천연가스와 석탄의 비중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 에너지 위기의 극복에 기여하고 있다. 올 1분기 한전의 손실은 7조 8,000억원으로 사상 최악을 보였다. 이는 도매 전력시장 가격(SMP)이 kWh당 180원 수준으로 급등한 반면, 소매 전기요금은 동결되어 kWh당 110원 정도이었으므로 연료비 상승은 모두 판매사업을 담당하는 한전에 전가되었다. 이대로 가면 올해 적자는 30조 내외, 내년에서 자본 잠식이 예상된다. EU와 일본의 전력 판매사업자들의 줄 도산이 국내 최대 공기업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 당장 필요한 조치는 3분기에 연료비의 인상분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저원가인 원자력(60원/kWh), 석탄(145원/kWh)의 발전 비중을 높이고, 고원가인 LNG(220원/kWh), 유류(235원/kWh) 비중을 낮춰 인상 요인을 줄일 필요가 있다. 또한, SMP를 결정하는 LNG의 제세금과 부과금을 한시적으로 감면하고, 유럽에서 논의되고 있는 가스 가격의 상한제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로부터 발생하는 한계 발전기의 손실은 시장 외부에서 별도 정산으로 보전해 주면 된다. 전기요금 인상의 충격이 큰 저소득층, 자영업,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에너지 바우처 지급, 세금 감면 등 제반 지원 정책을 총 동원할 필요성도 있다. 

글로벌 전력시장은 올 여름 최악의 폭염으로 인한 수요의 폭발적 증가, 천연가스와 석탄 등 연료 확보의 비상, 도매 전력시장가격과 소매 전기요금의 폭등, 공급력과 연료 부족으로 인한 대규모 정전 등 전력산업 100여년 역사상 가장 최악의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적으로 판매전력량이 가장 많고 폭염의 가능성이 있는 3분기에 전기요금을 정상화하지 않으면, 피크 수요의 통제력 상실로 인한 수급 위험,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한전의 영업손실을 볼 수 있다. 비교적 안정적인 포트폴리오와 공급력 확보도 이때에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여름까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