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계령풀

봄이로구나했더니 벌써 여름의 문턱이다.

2월 중순 경 여수 향일암 변산바람꽃 소식으로 시작된 봄꽃들이 백두대간을 따라 강원권까지 와서 우리를 부른다. 강원권에서 봄꽃의 명소로는 태백산, 점봉산, 오대산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찾기 쉬운 태백산은 4월 말경이면 봄꽃들의 향연이 시작된다.

올 해 태백화원 꽃기행길은 한계령풀, 태백바람꽃을 만나기 위해 남녘에서 반나절 길을 달려온 김해화 시인과 함께 하였다. 삼년 째 태백산 봄꽃을 찾은 내가 꽃길 안내를 맡은 것이다.

해발 880미터인 유일사 매표소에서 꽃기행을 시작했다. 500미터쯤 산길을 오르면 태백사 입구에 첫 길안내 표지가 있다. 좌측의 포장도로와 우측의 흙길이 있는데 흙길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숲의 나무들이 아직 푸른 잎들을 내기 전이라 숲의 봄꽃들은 서로 모양을 뽐내며 앞 다투어 피어있다. 홀아비바람꽃, 피나물, 동의나물, 연령초와 인사를 나누며 10분 정도 산길을 오르면 이깔나무 숲이 끝나는 지점부터 드디어 태백화원이 펼쳐진다.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남빛 갈퀴현호색 군락, 그 꽃들 곁에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인 큰괭이밥, 박새의 연두빛을 배경으로 발레를 추는 듯한 보랏빛 얼레지, 그 사이사이로 순백의 홀아비바람꽃, 꿩의 바람꽃, 나도바람꽃이 발 디딜 틈이 없이 흐드러져 있다.

조심조심 꽃들과 인사를 나누다가 흔하지 않은 흰, 분홍색 갈퀴현호색과 겹꽃의 홀아비바람꽃을 만났다.

구불구불 오르는 산길을 따라 끝없이 펼쳐지는 꽃들의 향연에 몇 발자국 못가고 멈춰서는 발걸음에 한 시간이면 오를 수 있는 산길이 두 시간이 걸렸다.

유일사가 보이는 주능선에 가까이 올라서니 한계령풀이 손짓을 한다. 한 일주일 정도 늦은 감이 들지만 다행스럽게도 남아 기다려 주는 녀석들이 있다. 고맙구나,

유일사 쉼터(1,300미터)에서 장군봉 오르는 길은 너덜지대라라 꽃이 많지는 않지만 얼레지와 노루귀가 간간이 눈에 뛴다.

장군봉 가까이 주목나무 숲이 시작되면서 다시 꽃들의 향연이 시작된다. 온통 얼레지 숲이다. 수만송이 보랏빛 얼레지 사이에서 흰얼레지를 만나는 행운이 있었다. 티도 흠도 없는 순백의 얼레지 앞에 서니 팍팍한 산길의 고단함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장군봉, 천제단을 지나 점심을 먹고 하산길로 접어든다.

하산길은 망경사를 지나 백단사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 길에서는 나도양지꽃, 금강제비꽃들이 보인다. 당골광장과 백단사의 갈림길이 있는 왼쪽 숲에는 태백바람꽃이 한창이다. 여느 바람꽃 보다 도발적인 자세의 태백바람꽃이 흐드러졌다.

산길을 다 내려서 백단사 옆의 계곡에도 물길을 따라 피나물, 홀아비바람꽃, 태백바람꽃, 나도개감채 등을 끝으로 하루의 꽃기행을 마쳤다.

삼년 째의 태백화원 꽃산행이지만 보고 또 봐도 가슴이 뿌듯한 꽃기행길이다.
내년 이맘 때, 나는 또 이 길에 서 있으리라.

<글+사진=김인호 한국남부발전 문화홍보팀 과장>

■갈퀴현호색/양귀비과=강원도의 높은 산에 드물게 자라는 한국특산식물이다. 꽃색과 같은 색의 꽃받침이 갈퀴 모양으로 가늘고 깊게 갈라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다른 현호색 종류들과 구분된다. 꽃은 4월에 진한 청색으로 핀다. 태백산에는 분홍갈퀴현호색, 흰갈퀴현호색도 보인다.

▲ 1.흰갈퀴현호색 2.분홍갈퀴현호색 3.청색갈퀴현호색 4.갈퀴현호색

■한계령풀:설악산 오색계곡의 한계령 능선에서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에 한계령풀이라고 한다. 매자나무과의 식물로 주로 중북부 지방에 서식하며 태백산, 가리왕산, 설악산, 점봉산, 자병산 일대에서 자생하며  환경부에서 희귀종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한계령풀은 2년초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다년초로 4월초에 개화하며 5월 중순이후부터 지상부는 고사한 후 휴면에 들어간다.

▲1.한계령풀  2. 얼레지와 어우러진 한계령풀 3.희귀종으로 보호되고 있는 한계령풀.

■얼레지/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한국, 일본에만 분포되어 있는 꽃이다. 꽃술부근에 W자를 아로새기며 피는 모습이 특이하다. 바람난 여인이라는 얼레지의 꽃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넓은 초록색 잎 위에 자주빛 얼룩이 어루러기 같이 있어서 얼레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슬픈 노래를 의미하는 영어의 엘레지와는 상관이 없는 우리말 이름이다. 간혹 흰얼레지가 발견된다.

▲ 1. 수만송이 보랏빛 얼레지 속에 피어난 한 송이 흰얼레지 2.발레리나 같은 모습의 얼레지 3.바람난 여인이라는 꽃말을 지닌 얼레지

■연영초=연영초는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봄 숲 속에 꽃대 한 개가 올라오고 세 장의 잎이 먼저 펼쳐진다. 잎은 넓은 달걀모양 같기도 하고 언뜻 보면 각이 부드러워진 사각형 같기도 하다. 잎맥을 보면 잎 모양을 따라 먼저 나란히 맥이 발달하고 다시 사이사이에 작은 맥들이 이어진다. 잎 크기는 손바닥 정도로 큼직하다. 그 중앙에 작은 꽃대가 다시 올라와 화살촉 같은 꽃봉오리를 펼쳐내며 꽃을 피운다. 꽃이 지면 까만 구슬 같은 열매가 익는다. 연영초는 모습이 곱지만 관상용으로 대중화되기엔 어려움이 많다. 햇빛이 직접 닿으면 이내 잎이 타버린단다.

▲ 숲속의 청순한 요정같은 연영초

■태백바람꽃=태백바람꽃은 최근에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발표된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태백’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태백산에서 처음 발견됐기 때문. 신종으로 발표한 식물학자는 발표 당시에 태백바람꽃을 회리바람꽃과 숲바람꽃의 교잡종이라고 밝힌 바 있다.

▲ 1. 뿌리 모양이 꿩의 발톱을 닮은 꿩의 바람꽃 2.변이종으로 보이는 겹꽃의 홀아비꽃 3.꽃받침이 뒤로 제껴진 태백바람꽃 4.무리지어 피어난 홀아비바람꽃 5.너도바람꽃과 대비되는 나도바람꽃

▲ 1. 수줍음을 타는 미소년같은 큰괭이밥 2. 줄기를 꺽으면 붉은액이 흘러나오는 피나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