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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불법행위와 소비자구제-법적 구제제도의 개정, 보완 그리고 혁파
나경수 (사)전자정보인협회 회장
2019년 06월 09일 (일) 11:37:20 전력경제 epetimes@epetimes.com

우리나라 경제는 바야흐로 산업화시대를 거쳐 개인의 인격과 창의력을 존중하는 성숙한 자본주의 시대로 진입한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사법분야는 여전히 산업화시대의 옛날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화시대에서는 기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근로자나 소비자들의 희생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사고가 팽배하여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산업화 시대의 고루한 사고가 아직도 여러 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러한 옛날의 사고가 그대로 사법의 영역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따라서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기업편향의 재판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암담한 현실이다.

기업의 개인정보유출시에, 결함있는 제품의 판매시에 담합과 대형사고 또는 지식재산권침해로 인해 손해를 입은 개인은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경비 및 시간 등의 힘든 고비를 필히 거쳐야 한다. 자본주의가 성숙기에 접어들수록 기업의 불법행위로 인한 일반 대중의 피해는 갈수록 커가고 있다. 여기에는 손해입증의 어려움이 있고 더군다나 입증이 되어 승소가 된다 하더라도 배상액이 너무나 턱없이 적은 편이다. 사실상 소비자나 개인에게 피해를 감수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오늘날 민낯의 현실이다.

최근의 사례를 보면 특허침해를 어렵게 인정받았다고 해도 변호사비용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소액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특허가 있어도 결국에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라는 자조적인 이야기가 생겨나기도 했다.

예순을 넘은 부모가 수술 중에 갑자기 사망한 경우가 발생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양심적인 변호사라면 소송을 처음부터 아예 포기하라고 권유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의료과오를 입증하기란 큰 산이 앞에 가로막고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어렵게 넘어봤자 배상액은 얼마 되지 않은 몇천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원이 손해배상액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 얼마 전에 한 유력한 기업인의 일당 노역액이 5억원이어서 사회적인 논란이 되기도 했다. 법원의 사망사고시 위자료액의 가이드라인은 불과 8000원인데도 불구하고 누구의 일당은 5억원이고 누구의 목숨값은 8,000원인 셈이니 한참 잘못된 세상인 것은 틀림없다.

또 과거 2013년 2월에 있었던 SK커뮤니케이션즈의 개인정보유출사고에 대해 20만원씩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하급심 판결이 있었다. 기업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인데, 손해배상액이 고작 20만원이라는 것은 일종의 희극적인 코메디 판결로 선뜩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피해입증책임을 합리적 수준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법원이 피해 입증책임을 엄격하게 요구하고 있는데, 비전문인인 개인의 권리구제를 어렵게 하는 주요원인이 되고 있다. 또 개인정보의 수집 및 유출과 관련하여 모두 기업의 지배영역에서 발생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피해자 개인에게 2차 피해의 발생을 입증하라는 것은 과도하게 입증책임을 요구·부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조물 책임소송(PL)에서 결함을 확실하게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과도한 것이다. 이는 곧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서 이는 PL법 원래의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할 수 있겠다.

미국 법원의 경우에는 피해자가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입증책임을 완화해서 사실상 <자동차에 결함이 없다>는 사실을 자동차 제조회사가 입증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도 미국 등 외국에서 결함으로 인정된 선례가 있고, 기술적으로도 문제점이 있음이 소명된다면 원고가 입증책임을 다했다고 보는 “입증책임의 완화”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최근의 PL법 개정이 이와 같이 이루어졌다.

나아가 징벌적 배상제도를 과감하게 강화할 필요가 있다. PL법에서 현행 3배수 배상에서 5배수 정도로 높여서 피해 소비자를 충분하게 보상하고 기업에게는 징벌강도를 높여 더 이상 같은 종류의 악의적이고 상습적인 피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일벌백계의 처벌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공정거래법 위반, 주가 조작, 인격권 침해, 소비자 피해의 심각성, 개인정보피해, 차별로 인한 피해 등을 효과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징벌적 손해배상의 수위의 강도를 현행에서 높일 필요성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의 독일의 BMW 자동차의 화재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과거 개인정보유출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국내 주요 카드사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태로 인한 불안감이나 울분이 사그라지기도 전에 KT에서 1,2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KT는 2004년과 2012년에도 개인정보를 해킹당한 전력이 있다. 이번이 벌써 3번째 유출사고이므로 당시 강력한 제재 없이는 기업 스스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자발적인 노력을 할 것을 기대하기란 정녕 어려운 일이다.

이와 함께 아미쿠스 브리프(Amicus Brief : 법정의견서) 제도 도입을 우리나라에서도 적극 추진하여야 한다. 이 제도는 사회적·경제적 사건에 관해 이해관계를 갖는 개인·기관·단체 등이 법원에 허가를 얻거나 법원의 요청에 따라 의견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개인이나 중소기업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이 제도의 활용은 관련사건에 관한 관심과 이해관계를 가진 시민단체 등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소송당사자로서 열세에 있는 개인이나 중소기업을 지원할 수 있다.

이 제도의 도입은 각계각층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할 수 있게 함으로써 과격한 시위문화가 사라지고 성숙한 자본주의가 착오 없이 뿌리내리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어왔다.

기업의 범죄행위에 대해 형사처벌 대신에 거액의 벌금과 준법감지시스템 정비를 요구할 수 있는 미국식 불기소협약(NPA)과 기소연기협약(DPA)도 한 번쯤 사법부 개혁을 위해 우리도 검토해 볼만하다. 지난 2017년 3월 일본의 도요타사는 미국 법무부에 12억달러(약 1조 3,000억원)의 벌금을 내고 자동차의 급발진 은폐문제의 수사를 종결하기로 합의를 보았는데, 이것이 이른바 불기소 협약이다.

법원은 ‘기업이 망한다’는 기업의 엄살에 더 이상 겁먹으면 안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성장해온 우리나라는 지금은 과거 국민 희생을 통한 기업보호의 필요성이 이제는 그 설득력을 잃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고객인 개인, 미래 성장 동력 제공자로서의 창조적 개인과의 상생을 위해 노력할 때에만이 기업도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행위로 인하여 개인이 입은 손해에 대한 합당한 보상과 함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의 도입과 그동안의 고질적인 비합리적 관행의 타파가 시급하다.

개인이 소송으로 배상을 받기에는 힘든 고비가 많고 넘어야 할 산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법원은 배상액수를 현실에 맞게 높이고 또한 소비자의 입증책임도 대폭 완화해야 한다. 징벌적 배상제도를 양성화하여 하루가 달리 급속히 변해가고 있는 시대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 장시간을 요하고 비용과 노력이 소모되는 구태의연한 재래의 법원판결보다는 양 당사자 간 상식의 토대에 의한, 합의에 의한 조정제도가 조속히 뿌리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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