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오늘의 우리나라 전력시장을 더듬어 보자고 모인 한 워크숍에서 어느 연사가 현재 우리나라 전력시장의 모습을 단적으로 지적한 말은 그 곳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에게 짙은 공감과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필자가 이해한 그 내용인즉 지금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경쟁도입은 더 나은 합리와 효율을 겨냥한 미래를 향해 건너려던 강을 반도 채 미치지 못한 곳에서 머물러 더 나아갈 방향을 뚜렷이 정하지 못하고 이도 저도 행함이 없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많은 이의 마음을 착잡하게 하는 것이지만 그야말로 오늘 우리 전력산업의 현실을 직시한 견해일 것이다.

 이제는 처음 봐 두었던 방향대로 곧 바로 가야한다고 주장하거나 또는 그리 믿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혹자는 되돌아가야 한다고도 하고 또 혹자는 이런대로 머물러 물길을 봐가며 생각해 보고 다음 행동을 정하자는 의견도 있는 듯하다. 이왕에 멈춘 김에 그 동안 여러 형편이 바뀌었으니 노를 보수하고 노 저을 사람들의 힘을 기르고 형편을 살펴 피안에 안착할 지점을 골라 다시 방향을 잡아 강을 건너야 한다는 측도 있다.

방향도 못잡은 채 표류

애당초 정해진 일정에 의하면 지금쯤 배전부문 분할이 완결돼 발전회사와 배전회사 간 도매경쟁이 이루어지고 2년 후의 배전망 개방을 통한 소매경쟁을 준비할 시점일 것이다. 그 연사의 지적처럼 지금 우리의 방향을 정하지 않은 채 ‘이대로’ 그냥 표류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7년 전 당시의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된 전력산업의 구조개편에 관련한 여러 가지 법과 령은 아직 살아 있으나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 많으니 우리 사회는 범법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법령이 정한 일을 행하지 않는 미필적 고의를 묵인하고 있는 셈이다.

그 동안 발전부문의 분할을 통해 일정 부분 가시적인 경쟁효과도 있었고 배전 분할은 중단 되었지만 배전 사업부제를 시작, 내부적인 경쟁을 유도하고 있으니 아무 행함이 없다 할 수 없고 그러니 그 효과를 기다려 보자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당초에 계획돼 있던 부분적인 발전 민영화 방침은 빛바랜 지면에만 남아있을 뿐 누구도 선뜻 발전 민영화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배전부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영화는 이미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말이고, ‘경쟁도입’도 무늬만 있을 뿐 그럴 싸 해 보이는 시도는 없다. 당초 계획했던 경쟁도입의 목적은 전력산업의 효율을 배가시키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 고부가가치 서비스 및 부대산업 창출을 촉진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분할된 발전회사나 배전 사업부제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최소한의 대안이 되려면 경쟁촉진 효과 및 책임성, 투명성 확보를 전제한 의사결정권의 완전한 자율성이 보장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의 발전부문이나 배전부문의 구도를 경쟁이 도입돼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발 하나씩을 서로 묶은 2인3각 경기의 같은 조 두 선수를 경쟁시키는 형국이다. 많은 것을 묶어 놓고 각자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대로 경쟁의 효과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거대기업 한전의 내부 경영효율 개선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전력산업의 문제만 아니다

전력산업의 구조개편 작업이 착수되는 초기에 필자는 경쟁 여건을 조성함에 대한 이견이나  논의과정 상의 부조화로 인한 과도기적 불편이나 부분적인 불합리가 경쟁도입 자체의 허물로 평가되는 일이 없기를 지적한바 있다.

경쟁도입의 당위성은 일견 모두 인정하면서도 이런 저런 여건조성을 이유로 경쟁을 촉진시킬 수 있는 여러 기회를 방기한 채 지금의 눈에 차지 않는 결과를 마치 경쟁도입 자체의 탓으로 여겨 전력산업의 경쟁도입은 아직 우리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며 지금이라도 온 길을 거슬러 되돌아가자는 주장이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바 전력산업의 경쟁도입은 더 이상 전력산업 자체 만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경제, 환경문제, 에너지 안보의 종합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하며 이제는 정치적, 기술적 여건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논의가 시작돼야 할 때이다.

필자만의 조급함인지는 모르겠지만 안타까운 것은 방법이야 어떻든 진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자는 시도가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다. 어쩌면 아직은 논의 자체가 금기시 돼 있다는 느낌이다. 이제는 다시 자세를 갖추어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시각에서 새롭고 진지한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