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발전의 민영화문제가 한참 거론되던 시점에 어떤 사람들은 망산업에 종사하는 전력회사를 민영화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발전사업은 망을 이용하는 산업이지 결코 그 자체가 망산업이 아니다. 고속도로를 관리하는 도로공사는 망사업체이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는 운송업체는 망사업체가 아니다. 운송업체가 실어 나르는 화물을 생산하는 사업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그 주장을 결코 굽히지 않았다.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민영화를 반대하기 때문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전력산업이 파국적 재난을 당한 이후 구조개편을 계획하던 미국 남부의 몇몇 주가 구조개편작업을 보류하기로 결정하자 국내에서는 경쟁체제에서 규제독점체제로 복귀하는 주들이 늘고 있다는 주장이 유포됐다.

그러나 이미 도입한 경쟁체제를 버리고 과거 체제로 회귀한 지역은 한 곳도 없다. 심지어 캘리포니아도 경쟁이 도입된 부문은 그대로 유지하는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미국이 경쟁체제를 버렸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역시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구조개편을 반대하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구조개편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발전회사와 배전회사를 분리 분할하는 구조개편이 시장경쟁을 통해 전력요금을 낮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쟁의 효과가 그만큼 놀랍다는 찬사와 함께 해외의 성공사례들이 소개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와 닿는 설명은 없는 채 넘어갔다.

그저 경쟁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주장뿐이었다. 경쟁도입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구조개편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발전회사를 분리하면 한전의 전력조달원가는 발전원가가 아니라 전력구입 가격으로 결정된다. 발전원가는 보통 발전연료별로 다르다.

예컨대 kWh당 90원짜리와 20원짜리가 공존한다. 만약 20원짜리만 생산되는 시간대라면 구입가격이 20원으로 될 수도 있다.

그러나 90원짜리까지 생산되어야 하는 시간대라면 발전원가가 20원짜리인 전력이라도 구입가격은 90원 이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단기적으로 한전의 전력조달원가는 반드시 더 높아진다. 조달원가가 더 높아지는 상황에서 요금인하가 쉽겠는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 경쟁도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경쟁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말만으로 회피해 갔다. 구조개편의 정당성을 인정받는데 별로 유리하지 못한 사실이었기 때문에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경쟁의 위력이 막강한 것은 사실이다. 활성화된 경쟁은 90원짜리 발전을 집중 공격할 것이다. 만약 과거 독점체제가 구축한 연료구성이 비효율적인 것이어서 90원짜리 발전이 나타난 것이라면 발전부문의 경쟁은 이것을 도태시킴으로써 전력구입 가격을 낮출 것이다.

만약 시장수요 즉 부하구조가 90원짜리 발전을 요구한 경우라면 경쟁은 이 시간대 수요를 집중 공격하여 고가발전 요구를 소멸시킬 것이다. 소매경쟁은 이 시간대 전력소비를 자제하는 소비자들에게 다투어 낮은 전력요금을 제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력산업의 구조개편을 단행하고 경쟁을 도입하는 것은 사회적 선택이다. 민주국가에서 국가정책에 대해 찬반의사를 표명하고 선전운동을 벌이는 것은 시민의 권리다.

누구나 구조개편을 찬성 또는 반대하고 민영화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그러나 활발한 찬반논의를 거쳐 적법하게 결정된 사회적 선택은 존중돼야 한다.

다시 대통령 선거의 해가 되었다. 싫든 좋든 올 한 해는 정치의 계절이다.  모든 국가 정책이 정치운동의 공격목표로 될 수박에 없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문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치운동의 기본전략은 내 주장에 유리한 명분은 크게 내세우지만 불리한 소재는 뒤로 감추는 것이다.

그러나 유리하다고 해서 거짓의 명분을 내세우거나 불리하다고 해서 중요한 문제를 감추는 것은 옳은 자세가 아니다. 전력산업의 선진화를 추구하는 구조개편에 대해 그 공방논의과정도 선진적인 것으로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