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

2015년 을미년의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우리 전력 산업계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그 출발은 산뜻하게 시작한 것 같다.

왜냐하면 지난 몇 년간 지겹게 회자되고 전력당국의 골칫거리였던 전력수급 불안 문제가 작년 이후로 언론 지상에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국민들에게 이로 인한 불편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2014년 12월은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엄청난 추위가 맹위를 떨쳤으며, 당월 17일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전력수요가 8천만kW를 넘었다. 2010년 7천만kW를 돌파한 이후 4년 만에 원자력 10기에 해당하는 천만kW 전력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당시 공급예비력이 약 920만kW 수준이었으니 강제절전 등과 같은 전력수급 안정화 장치가 필요 없었던 것이다.

2013년 여름과 겨울철의 공급력 부족과 비교해 보았을 때 격세지감을 느낀다. 참으로 다행이다. 하지만 실상은 더욱 복잡한 문제가 숨어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여섯 면의 색깔을 모두 맞추어야 하는 루빅스 큐브를 한 면만 열심히 맞추다보니 다른 면이 엉망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지난 몇 년간은 한전의 적자를 중심으로 한 소매 전기요금이 이목을 끈 반면, 올해부터 향후 몇 년간은 한전과 발전회사 사이의 거래 수단인 도매시장제도(CBP)가 세간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대표적인 전력시장 규제 정책인 정부승인차액계약이 부생가스 발전을 필두로 금년부터 적용되며, 점진적으로 그 대상이 수력, 원자력, 석탄 등으로 확대될 것이다. 저원가 기저발전기는 향후 일정 수익률로 상당 기간 규제될 전망이다.

반면,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LNG 복합화력은 유가 하락, 예비력 증가로 인하여 이용률 감소와 수익성 악화를 경험할 것이다. 공급력 확대로 인하여 소비자와 한전은 느긋한 반면, LNG 복합화력을 소유한 공기업 및 민간발전은 경영난에 직면할 것이다. 전력당국은 소금장사와 우산장사의 두 자식을 둔 기분일 것이다.
 

전력시장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고 있는 북미, EU 등에서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장원리에 의하여 투자자의 문제로 귀환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이 낮으며, 이는 발전사와 판매사 사이의 장기계약 등 시장에 바탕을 둔 위험관리 수단이 잘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오해와는 달리 전력시장이 가장 잘 발달되어 있는 미동부시장에서 조차도 여전히 장기전력계약(PPA)를 포함한 계약 제도가 위험관리 측면에서 활발하게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하여 전력수요 예측과 신규 발전사업자 선정을 하고 있다. 이러한 진입 규제는 시장 원리와는 일정 거리가 있으며, 이로 인하여 전력수요 불확실성의 책임 주체, 선정된 기저발전기의 과잉 수익에 따른 논란, 정반대인 LNG 복합화력의 수지 악화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신규 투자를 시장원리에 맡겨 두거나 혹은 입찰에 기반을 둔 장기전력계약(PPA) 제도를 도입했더라면 상황은 상당히 나아질 것이다. 
 

운전 중인 발전기 수입은 용량요금과 비용입찰제도(CBP)의 에너지판매수입으로 결정된다. 이는 개념적으로 현물시장이므로 우리나라 발전사업과 판매사업은 물리적, 재무적 장기계약이 전혀 없는 상황에 노출된다. 즉, 위험이 극대화되며 이는 지난 몇 년간 한전의 재무위기로부터 관측한 바 있다.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천수답 전력시장제도이다. 또한, 용량요금 수준도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 혹은 첨두발전기(가스터빈)의 시장가격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규제 정책에 의하여 기준가격이 결정된다. CBP 제도의 한계성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비용 사항 사항마다 의사 결정이 필요한 대표적인 규제적 에너지시장이다.
 

발전기의 진입과 운전 모두 상당 수준의 규제에 직면하므로 시장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 북미 등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향후, 전력수급계획은 시장의 의사 결정으로 조급히 전환할 필요가 있다. 다만, 원자력, 신재생 등과 같은 정책성 자원은 정부의 개입이 필요할 수도 있다. 만약, 진입규제 정책이 지속될 경우에는 입찰기반 장기전력계약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용량요금은 단기적으로는 가스터빈의 시장가격에 기반을 두어 결정하여야 한다. 하지만 용량요금이 어떤 수치로 변경되든지 간에 끝없이 그 정당성에 대하여 시시비비가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용량시장의 도입은 불가피하며 이와 더불어 용량의무를 정부가 질 것이 아니라 한전과 같은 판매사업자에게 전가하여 자연스럽게 장기계약을 유도하여야 한다. 규제기관은 기준 예비력 등과 같은 정책적인 부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CBP 시장은 가능한 빨리 가격입찰제도(PBP)로 전환되어야 하며, 가격입찰 요소와 입찰 상한 등과 같은 정책적 요인은 당분간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전력수급제도와 전력시장제도로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적정 예비력 확보도 불가능하고 전력사업자의 위험도 관리할 수 없다. 가능한 빨리 시장 영역과 규제 영역을 분리하여야 한다. 늦었다고 인지할 때가 가장 빨리 문제를 해결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