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난 등 현재 전력산업계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계통운영과 장·단기 전력수급 책임과 권한을 전적으로 한국전력에 부여해야 한다.”
“실질적인 감독권을 갖는 강력한 전력수급 감독기관의 설립이 필요하다. 전기위원회와 전력거래소를 합쳐 독립규제 감독기구로 개편해 계통운영과 신뢰도, 시장시스템 운영 및 기능을 감시하도록 해야 한다.”

문영현 대한전기학회장

문영현 대한전기학회 회장은 11일 전력산업 토론회에서 “해마다 반복되는  사실상의 제한송전, 전력대란의 위기는 다가오고 있는데 뚜렷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라며 “전력정책 전반에 걸쳐 개선이 아닌 개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이같이 주장했다.
한국과학기술회관 소회의실에서 ‘9.15 순환정전 2년, 무엇이 달라졌나’라는 주제로 열린 전력산업 토론회는 전기학회가 주최하고 본지와 전기신문, 노영민 의원이 후원했다.
이날 행사에는 문영현 대한전기학회 회장, 노영민 국회의원, 김호용 전기연구원 원장, 이은웅 충남대 교수, 전영환 홍익대 교수 등 국내 전력관련 산학연 전문가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순환정전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특히 지난 2년간 수행한 대책을 점검하고 국민생활의 인프라로서 보다 스마트한 전력운영시스템 구축을 위한 대안들이 다양하게 제시됐다.
문 회장은  ‘위기의 전력산업, 개혁이 필요하다’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개혁의 기본방향으로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실질적인 책임감당을 가능하도록, 책임수행과 감시감독을 철저하게, 비효율성은 과감히 정리 할 것”을 제시했다.
특히 “전력수급에 대한 책임소재를 단일화해야 한다”면서 장·단기수급을 실질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한전만이 유일한 대안임을 강조했다.
정부의 정책 행태에 대해서도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해야 할 일은 안하고 해서는 안 될 일만 하고 있다”고 꼬집은 문 회장은 정부의 역할과 관련해 “인사권 행사를 통한 감시감독에 국한되어야하며 밀양사태 해결, 새로운 원전부지 확보, 송전선 경유지 확보 대책수립 등 정치적 문제는 정부가 전면에 나서 확실히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쟁적 시장시스템을 도입해 수급차질에 대비한 대책 부재를 초래한 전력산업구조 개편에 대해서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정부의 부하관리 정책도 도마 위에 올랐다.
문 회장은 “과도한 부하관리는 실익은 없고 부작용만 쌓이게 된다”며 ‘극약처방’이라고 평가절하한 후 “수요증가를 막으려면 요금인상이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설비부족하에서의 부하관리는 막대한 경제손실을 초래할 뿐이라는 것이다.
“원자력산업은 전략적 육성이 필요한 분야다. 정부가 분명한 정책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 문 회장은 “국민적인 신뢰 회복에 대해서도 폐기원전 수명연장 여부에 대한 확실한 입장표명과 원전관리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덧붙여 녹색에너지 산업이 지속적인 육성이 필요한 분야이지만 이를 이유로 재래 전력산업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점도 피력했다.
 20~30년 앞을 보는 장기적인 계획과 장기 로드맵을 세워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녹색사업이 기존사업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문 회장은 “전력산업 기반을 과도하게 잠식하면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제발표에 앞서 문 회장은 토론회를 여는 인사말을 통해 전력산업에 대한 정치권이나 정부의 인식을 일신하고 책임있는 전력정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우리는 2년 전 9.15 순환정전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를 맞아 전력산업의 취약성에 관한 일대 경고를 받았다. 순환정전 자체도 큰 피해와 사회적 충격을 안겨 주었지만 대정전 가능성에 대한 경고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시급히 대책마련에 들어가야 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달라진 것이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문 회장은 “순환정전의 유령은 대정전을 위협하며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대책마련은 하나도 없고 상황은 점점 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며 “변한 것이라고 부하관리라는 임시방편, 당근의 굵기와 채찍의 높이만 달라졌을 뿐이며 전력정책은 표류하고 있고 안정적 전력수급을 책임지는 곳은 눈 닦고 봐도 여전히 찾아 볼 수 없다”고 질타했다.
“산업계의 목소리는 외면당하고 정치권과 정부 관료들이 전력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고 잘못된 정책에 대한 사과나 반성은 없고 책임전가에 급급하다. 책임 있는 정책수립은 없고 심각한 공급부족도 강 건너 불이다”고 정부 대책의 안일함을 비판한 문 회장은 “전력산업은 전 산업의 인프라로서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일으키기가 매우 어렵다. 전력난 대책수립은 국가 전체 산업의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다. 그럼에도 정책수립이 전문가 의견보다는 정치논리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전력의 공급부족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정부는 내년 연말이면 전력이 남는다는 말을 퍼뜨리며 발전소 건설 등 공급력 확보의 필요성은 거론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문 회장은 “안정적 전력공급은 지속적이고 일관된 정책추진이 보장되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면서 “전력산업은 전기인에게 맡겨야한다”고 주장했다.

노영민 국회의원

노영민 의원은 격려사를 통해 “전기는 물이나 불, 공기 등과 같이 잠시라도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된지 오래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2년 전 9.15 정전을 통해 더 절실히 경험했다”며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대정전 사태를 망각하고 아직까지도 적절한 대책이 수립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정전의 원인분석과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수립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대표적으로 계통운영과 발전회사 통합 등 전력산업구조에 대한 개편 문제가 시급하지만 아직까지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전기 요금도 현실적인 개편이 시급하고 그리고 납품비리로 얼룩진 원전과 한수원에 대한 문제도 조속히 안정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노 의원은 “지난여름처럼 무더운 날씨가 오거나, 맹추위가 엄습하는 겨울에 정전이 발생한다면 우리 사회는 아비규환이 된다”며 “따라서 안정적인 전력수급 계획과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전력정책 추진은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은웅 충남대 교수(전임 전기학회장)

이어 전임 전기학회 회장 자격으로 격려사에 나선 이은웅 충남대 명예교수는 “우리의 문명생활과 국가의 산업발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기를 효율적으로 발전하여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하는 전기공학은 필요성을 강조하거나 존재가치를 알아달라고 보채는 일이 없고 부족하거나 사고로 사회에서 회자(膾炙)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학문으로 그렇게 되기를 우리 전기인들은 바란다”고 희망했다.
이 교수는 “경제성, 환경성, 공급안정성을 검토해 모든 것에 적합하지 않더라도 가장 유리한 발전방식을 택해 예측 수요에 맞춰 미리미리 발전소를 건설하고, 발전원가보다 높게 전기요금을 책정해 수요자에게 부족하지 않게 공급하면 해결되는 간단명료한 문제들”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다만 정치논리가 끼어들어 전문가의 의견이 무시되고 부정적 사고로 편향된 소수의 반대자가 일으키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시키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근준 충북도립대 교수

이날 문영현 회장과 함께 발제에 나선 이근준 전기학회 전력계통 연구회 위원장(충북도립대 교수)은  정전사태 주요 원인으로 “정확한 정보 처리와 계산력이 결핍된데다 정확한 판단지표와 전문가 기반정책수립, 전력자원의 유기적 관리체계가 총체적으로 미흡해 발생했다”며 전력기술 지원조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우리나라도 전력산업과 관련된 데이터, 정보, 모니터링, 오디션기능과  표준 관리 감독을 위한 전력기술 지원조직 및 시스템의 요구에 상응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이 위원장은 주장했다.
이어진 패널토의에서는 전영환 홍익대 교수가 좌장을 맡고 백수현 동국대 교수, 김주영 전력노조위원장, 박준호 부산대 교수, 유희덕 전기신문사 전력에너지팀장이 패널로 나서 토론을 펼쳤다.
김주영 위원장은 “전력노조는 이미 15년 전 구조개편이 추진될 때부터 공급 불안, 요금 폭등 등 문제를 제기했고 구조개편이 필연적으로 국민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 주장했는데 불행하게도 현실화 됐다”고 개탄하며 “2단계 구조개편이 중단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도 미국 캘리포니아와 똑같은 사태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패널들이 토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어 “9·15 순환정전 2년이 지난 시점에서 달라진 점은 거의 없다”고 지적하고 “전기학회가 엔지니어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전력산업은 이데올로기처럼 굳어져 버려 심지어 감사원도 전력산업의 문제점을 제대로 보려하지 않는다”고 개탄한 김 위원장은 “전력산업이 위기를 맞은 것은 시장화 정책의 도입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민자발전사업자들이 짓기로 한 설비의 66%를 건설하지 않아 공급력이 떨어진데다 전기요금과 맞물려 전력난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기적인 통합체제를 갖춰 두뇌와 심장, 손발을 이어줘야 한전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도록 한전으로의 재통합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