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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의 정출연법 개정법안은 국가 R&D의 4대강 사업

2012년 01월 27일 (금) 08:42:01

신명호 공공연구노조 공동투쟁위원회 정책팀장

epetimes@epetimes.com

MB정부는 시작할 때부터 과학기술에 관심이 없었다. 공공부문 R&D를 담당하고 있는 정출연이든 대학이든 MB에게는 다른 공공기관들과 함께 싸잡아 축소시키고 구조 조정해야 하는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이전의 정부들이 왜 국가과학기술혁신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는지, 왜 범 부처간 국가 R&D 기획과 종합·조정을 위한 혁신본부를 설치하는 등 국가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모방에 기초한 추격형 R&D 전략이 1990년대 후반부에 들어서면서부터 한계에 달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국가 R&D와 관련된 행정체제개편과 과학기술정책은 이전의 성과마저도 무화시켜 PBS를 도입했던 김영삼 정부 수준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임기를 1년 남겨둔 정권말기가 되자 이제 더 이상 써먹을 게 없었는지 마지막 치적과 자리 챙기기의 대상으로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을 정한 것 같다. 행정도시 이전을 입막음하려 시작했던 ‘은하도시-과학벨트’가 기초과학연구원 설립으로 마무리되더니 이제는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 산하 18개 정출연을 모아 ‘가칭 국가연구개발원’이라는 단일 법인을 만들겠다고 한다. 얼마나 멋진 그림인가? 국민 모두가 중요하다고 하는 과학기술 영역에 연구 인력만 수천여명에 육박하는 두 기관을 대공장 만들 듯이 번듯하게 만들었으니 MB라면 쌍심지를 켜는 국민들에게 ‘나도 나름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연구기관은 공장이 아니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국가 R&D를 담당하는 주요부서가 국가 R&D ‘대공장’을 하나씩 나눠가지기로 한 계산이 나온다. 국과위가 ‘국가연구개발원’을, 교과부가 기초과학연구원을, 지경부가 생산기술연구원과 전자통신연구원을 나눠 가졌다. 지난 정부들에서 숨죽이던 관료들이 MB정부 들어서서는 제 세상 만난 듯이 노골적으로 부처 이기주의를 드러내고 있다. 이들 정부부처와 소속 관료들은 연구회나 혁신본부 등 외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핵심은 그대로 유지한다. 바로 국가 R&D 예산 집행 체계와 평가에서의 지배개입이다. 이들은 국가과학기술시스템에 조직화된 부패구조가 형성되든, 정보불완전성 때문에 자원배분과 의사결정이 비효율적이든, 연구 분야와 연구주제가 획일화되고 연구 다양성이 상실되든, 비정규직 양산으로 연구역량이 감소하고 경력있는 연구자가 줄고 두뇌유출이 발생하든 관심이 없다. 시스템이 실패하고 국가의 R&D 잠재력이 고갈되어 가는데도 자신들의 ‘나와바리’를 지키고 전현직 관료들을 낙하산으로 산하 연구기관으로 내려 보낼 수 있으면 그만이다. 연구는? 돈만 많이 투입하면 ‘대공장의 노동자’들이 알아서 할 텐데 무슨 걱정인가? 그러나 1990년대 후반이 되면서 국가 R&D를 공장에서 자원 투입해서 제품 만들 듯이 하면 된다는 기술공급정책은 한계에 부딪혔다. 결국 국가 R&D에 대한 정부 지배개입과 PBS라는 시스템 실패의 원인들이 부처 이기주의와 관료들의 이권추구에 막혀 해결되지 않는 한, 그 어떤 외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실패를 동일하게 반복할 뿐이다.
MB정부가 틈만 나면 들먹이는 독일과 일본의 공공연구기관들이 있다. 무식하거나 자기이권에 눈이 먼 자들은 피상적인 수치와 외형적 규모만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그들의 하드웨어적인 요소와 소프트웨어적인 요소를 상세하게 살펴보면 그들은 실제로 세심하게 국가 R&D의 영역을 구분하고 역할과 기능에 따라 기관 고유사업 예산 (block grant)과 프로젝트 기반 예산의 비율을 조정하고, 연구과제의 선정을 위한 사전평가와 연구결과의 질적 평가를 개선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으며, 연구 자율성과 과학진실성을 보장하기 위해 거버넌스 체제와 규범을 정교하게 관리하고 있다. 또한 융합연구나 유사 중복성 조정 문제는 연구개발 과제의 기획과 사전평가에 해당하는 사항으로, 획일적으로 연구기관을 통폐합한다고 해서 이와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세계 어디에서도 졸속적인 구조개편을 통해 성공적인 연구기관을 설립하고 운영한 예를 찾을 수가 없다.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을 재구성하고 기술혁신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국가의 백년지대계라면 시스템 실패의 원인들을 제거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서 충분한 정책적·조직적 검토를 거쳐 구체적인 변화를 점진적으로 기획하고 추진해야 한다. 이것이 과학기술 선진국이 수십여 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통해 지금과 같은 공공부문 R&D 시스템을 구축해낸 비결이다.
그러나 작금의 법안은 허울만 요란할 뿐 구체적인 계획은 하나도 없는 홍보선전물에 불과하다. MB정부가 4대강 사업을 시작함으로써 국토를 유린하고 환경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처럼, 이 법안이 추구하는 정출연 구조개편과 단일법인화는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의 역량과 잠재력을 손상시킬 것이다. 국가정책에도 정책적·이론적·경험적 근거와 논리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정부의 정책에 대한 평가가 없는 대한민국이라 하더라도 일단 ‘국가연구개발원’으로 합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사항이 정책의 근거와 논리가 되지는 못한다. 건설기술연구원의 김이태 박사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4대강 사업을 비판했던 것처럼 우리 노동조합은 정책자료를 통해 작금의 법안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허황된 지를 정책적·이론적·경험적 근거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정책대안의 주요 내용을 제시했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MB정부가 주장하는 ‘국가연구개발원’은 ‘로봇물고기를 이용한 수질검사’와 같은 어이없는 해프닝이 되고 결국 그 폐해와 이를 다시 복구하는 일 또한 연구현장이 모두 짊어지게 될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과학기술정책에 무관심하고 무능한 정부 덕분에 노동조합이 국가과학기술시스템에 대한 정책연구를 하게 되었다. 우리 노동조합은 국과위를 통해 정출연 거버넌스를 일원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공부문 R&D 시스템 전체를 개혁할 것을 주장해 왔다. 국가 R&D에 대한 정부의 지배개입과 PBS로 인해 왜곡되고 뒤틀린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을 정상화하고 사회복리 증진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엔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변화를 요구했던 것은 우리 노동조합이었다. 그런데 지금 MB정부에 대해 우리가 내리고 있는 결론은 하나다. 국가 R&D 시스템의 역사와 현실, 구성과 전략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서 지난 4년 동안 ‘공공기관 선진화’라는 미명으로 연구현장을 들쑤신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정부가 아닌가? 나머지 1년, 실력도 의지도 없으면서 엉뚱한 욕심 부리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