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전력공급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만큼 초유의 9,15 대형정전사고는 사회적 파장이 컸다. 전력기술인에게도 무거운 숙제를 안겼다.  이번 기회에 원자력 발전에 대한 우려, 1차 에너지 가격 상승, 전기요금 합리화에 대한 저항 등 전력사업 환경 전반에 걸친 당면 과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로 부상했다.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는 21일 ‘915 순환정전이 남긴 숙제와 과학기슬 해법’을 주제로 제 40회 과총포럼을 열었다.

이날 ‘915 순환정전사고의 경위와 향후 개선 방향’이란 주제로 발제에 나선 권석기 전력거래소 계통운영처장은 순환정전이 발생한 원인으로 전력수요 예측 실패, 공급능력 판단 미흡, 기관 간 정보 미공유, 위기 대응 시스템 작동 미흡, 대국민 홍보 지연 등을 꼽았다.

권 처장은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먼저 수요예측 시스템을 정밀하게 개선할 것을 주문했다. “기존 예측 시스템에 이상 기후현상이라는 변수까지 반영하고 기온 대상도시를 5대도시에서 8대 도시로 늘려야 한다. 한전과 기상청 등 유관기관이 예측정보를 확보하는 등 협조체제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

수요관리 자원을 확대하고 자율절전 참여율을 제고하기 위해 지원금 수준을 상향 조정할 필요성도 역설했다. 권 처장은 “궁극적으로 전기요금 체계를 실시간 요금제(RTP)와 피크 억제형 요금제(CPP)를 도입하는 등 전기요금 체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안정적인 예비력 확보 방안으로 예비력 확보기준의 적정성을 재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력계통 규모가 커지고 기후변화등 환경변화에 맞게 기존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속응성이 높은 양수발전기의 공급능력을 강화하는 것도 예비력을 높이는 방안의 하나로 제시했다. 무엇보다 공급능력 오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실시간 감시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오차 과다 현상이 발생할 경우 제제조치 강화 방안을 강구할 것을 언급했다.

권석기 처장

권 처장은 “행안부와 지경부의 위기대응 매뉴얼이 달라 혼선을 빚었다”며 현행 매뉴얼의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존 매뉴얼을 긴급 또는 일반으로 나눠 이원화시키고 관련 기관끼리도 매뉴얼을 하나로 통일해 공조하는 시스템 강화가 요구된다. 선조치 후보고가 필요한 경우는 규정을 명확히 하고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유관기관 관련 직원 모두에게 동시 통보되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공급예비력, 운영예비력, 주파수 등 수급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는 공조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 권 처장은 “위기상황 발생 때는 재난 관리기관인 행안부 소방방재청 경찰청 등 정부부처로 신속하게 통보하고 경계단계 발령시에는 언론에도 상황을 통보해 협조를 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끝으로 권 처장은 기존의 낡은 부하조정 기준도 대상이나 적용기준 차단방식을 바꿔 현실화할 것을 강조했다. “비상발전기를 소유한 단독선로 소비자를 1순위로 놓고 중소 및 대규모 상가와 일반주택, 아파트를 2,3 순위로 정해 운영하고, 순위에 관계없이 30분 단위로 순환하던 기존 차단방식을 2시간 단위(1순위)와 30분 단위(2,3순위)로 차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전력정책심의위원회 위원)는 ‘장단기 전력수급 확보 방안’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이번 순환정전을 놓고 정치적인 소모전이나 기관별 이기주의 논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책을 수립하는 게 급선무”라고 역설했다. 위기로부터 기회를 창출해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전력정책을 변환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규모 생산- 수송- 판매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수요시장 스마트그리드 등 다른 형태의 가치도 정책에 포함시킬 것을 주문했다. 박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올 동절기를 극복하는 대책 수립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최악의 경우 예비력이 100만kW~200만kW에 그치는 위기 상황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한 실정이다. 상용, 비상용 자가발전기를 최대한 활용하는 한편, 가스엔진등 분산자원 부문에 투자가 시급하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상시 수요시장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수요예측은 과도기적으로 한전, 전력거래소가 시행하되 판매경쟁이 도입되면 판매사업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맞다고 박 교수는 주장했다. 박 교수는 “장기 수급안정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최우선적으로 전기요금 현실화와 전기요금제도선진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순환정전의 원인을 전기요금 현실화가 늦어져 타 에너지의 전기 이전이 폭증한 것에서 찾았다. 

박 교수는 “과거와 같이 대규모 설비투자를 통한 고예비율 시대의 도래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용량 수요시장을 활성화하고 안정적인 공급력을 확보해내는 메카니즘을 실현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동욱 경남과총 회장(전기연구원 연구위원)이 좌장을 맡아 지정 토론이 열렸다. 연구계 대학 시민단체 등 각 계 대표로 나선 패널들의 발언 내용을 요약했다.

수급계획 불확실성 대처 시급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향후 예상되는 불확실성 요인은 훨씬 다양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RPS에 의한 신재생발전의 확대, 온실가스 저감 대응, 스마트그리드와 전기자동차, 발전소 및 송전선로의 건설공기 지연 가능성 등이 새롭게 고려되어야 할 요인들이다. 대부분 정책변수로서 수급계획의 전제 내지 제약조건이 되고 있다.

단기적인 땜질식 처방으로는 만성적이고 장기적인 수급불안에 대처하기 어렵다. 불확실성 감소와 적절한 대처를 위해 다양한 접근방식의 적용과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박종배 교수

전기요금 시장기능에 의해 결정돼야
문승일 서울대 교수=이제 새로운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먼저 국민들에게 전력소비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면서 정전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미리 정전을 예보해줘야 한다. 앞으로는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설비를 더욱 늘려 나가야한다. 전기요금이 시장기능에 의해 결정되도록 한다면 수요가 늘어날 때에는 전기요금도 함께 올라가서 최대수요가 줄어들 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예비력을 갖추기 위해 발전소를 짓는데 필요한 막대한 건설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되어 결국은 더 값싼 전기를 공급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 일을 교훈삼아 스마트그리드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전력신회도위원회 설립 급선무
문영환 전기연구원 스마트그리드연구센터장=현대사회 전력공급의 중요성과 국내 전력사업의 규모를 감안할 때 더 이상 현재의 전력관리 체계로는 신뢰도 유지가 어려을 것으로 보인다. 현행 행정 위주의 관리체제를 업그레이드해 더욱 전문적이고 상시 운영되는 신뢰도 체계가 필요한 상황이다. 주요 역할은 전력 신뢰도 기준을 만들고 준수상황을 감시해 중장기 신뢰도를 평가하는 것인데 고장 분석과 핵심 전력시설의 보호대책 그리고 실시간 계통을 감시하고 분석하는 기능도 아울러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에너지 정책에 대한 총체적 점검을
이덕환 서강대교수(대한화학회 차기회장)=순환정전의 진짜 원인은 총체적 위기에 빠진 에너지 정책이다. 전기를 물 쓰듯이 하는 국민을 비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원가 이하로 전력을 공급해 낭비를 부추긴 지경부 책임이 크다. 정부의 잘못된 기름값 정책이 난방용 전력수요를 증가시킨 것은 더 큰 문제다. 비닐 하우스와 식당의 난방이 모두 전기로 바뀌고 있다. 최고급 에너지인 전기를 값싼 에너지로 착각하게 만든 것은 심각한 정책적 실패다.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합리화와 효율화가 절박하다. 에너지 정책을 산업.조세,농업,물류,복지 정책에서 확실하게 분리시켜야 한다. 원자력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필요하다. 유류세의 유혹과 녹색성장의 환상에 빠져버린 지경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유 산업과 주유소 죽이기에 집착하는 한 전력 사정은 더욱 악화될 수 밖에 없다. 전력 수급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 전체를 바닥에서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피크타임 고려한 소비자 행동 교육 필요
박명희 동국대 교수= 전력피크타임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알고 있는 소비자는 그리 많지 않다. 막연히 전력을 아껴야 한다는 정도일 뿐 전력사용에 있어 피크타임에 소비자가 어떤 전력사용 행동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교육을 확실하게 받은 적이 없어 피크타임 사용 자제에 무관심한 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전기에너지 소비자로서 알아야 할 전기 가격, 전력시장, 전기품질 등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 또 지속가능 소비습관의 확립을 위해 에너지의 합리적 사용과 구조적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