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부터 일본 전력중앙연구소(CRIEPI)의 스마트그리드로드맵에 대한 자료를 입수하여, 번역하고 있다. 미국의 전력연구소와 더불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연구기관이기에 틈날 때마다, 홈을 서핑하면서 마음에 와 닿는 자료가 있으면, 저장해 두었다가 번역을 한다. 물론 일본어 번역에 대한 감각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한 평상 시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나는 스마트그리드에 대해 다소 관심이 있어서 국내외 관련 자료를 자주 대하고 있다. 과학자나 엔지니어는 아니지만, 보고 들은 지식으로 반풍수 정도 풍월을 읊을 정도는 된다. 그런 소이로 인해 얼마 전 모 신문사 주간지 기자가 어떻게 알았는지 나에게 전화로 스마트그리드에 대한 나의 견해를 묻기에 “스마트그리드는 실상이 있는 듯, 없는 듯, 잘못하면 뜬구름 잡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말로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번에 전중연 자료를 번역하면서 맨 처음 마주한 문장 역시, “스마트야말로 현재의 백가쟁명 논쟁거리”라고 서술되어 있는 게 아닌가. 스마트관련 국제학술회의에서 자주 얼굴을 보이는 일본 전중연의 전문가조차 스마트그리드라는 용어가 전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명확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았다며, 이처럼 백가쟁명의 논쟁 상황을 언급하고 있으니, 내가 생각하는 뜬 구름과도 일맥상통하지 않나 싶다. 사족이지만, 상황이 이러다 보니, 국내에도 어중이 떠중이 스마트그리드 전문가네 하면서 얼굴을 내미는 사람도 부지기인 듯 싶다. 한 분야에 최소한 5~10년 정도 파고들어야 전문가랍시고 행세를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어쨌든 일본은 기술선진국이다. 전중연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전문 연구기관이다. 미래를 내다보며, 미래를 지향하는 정책과 기술의 연구개발이 동시에 체계적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것을 이번 번역기간에 다시 한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미 전중연은 지난 2000년부터 분산형전원이 머지 않아 대량으로 전력계통에 도입될 것을 알고서, 새로운 배전계통을 ‘수요지계통’이라 이름하고, 현재의 스마트그리드와 관련된 연구를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수행해 왔다는 것을 자료 번역을 통해 행간 행간에서 알게 되었다. 새로운 수요지계통이 가까운 장래에 시대적 조류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전력의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기 까지 전체를 망라하는 넓은 시각에서 접근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는 것은 경영자와 과학자 모두의 넓고 깊은 안목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던가.

전중연은 현재 기관 내부에서는 Smart Grid라는 이름 대신 ‘차세대 그리드’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들은 차세대 그리드를 영문으로는 TIPS라 부르고 있다. 스마트그리드가 갖고 있는 특질이 지적(Intelligent), 상호 영향적(Interactive), 통합적(Integrated)이기에, 3개의 영문 이니셜 “I”를 가진 전력시스템이라는 함축적 의미로서, Triple I Power Systems (TIPS)으로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전중연이 향후 일본의 전력공급 이용인프라가 만족할 수준으로 구축해야 할 요건으로서, ▲안정적인 운용체제를 확보하는 동시에 대규모 정전 리스크를 극소화하고 교란정전회복력을 최우선하며 ▲성에너지 · 에너지 유효이용을 수용가와 일체화하여 실현가능하게 하고 ▲재생가능에너지 (특히, 일본의 특장인 주택용 태양광 발전(PV)의 확산)의 유효활용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설비유지관리의 고도화와 대체 등을 통해 설비 차원의 시대적 욕구에 부응해 나간다는 4가지이다.

한편, 전중연은 TIPS 개발전략과 비전을 수립하면서 Backcast와 Forecast 기법을 적극 활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Backcast는 ‘미래를 기준 시점으로 현재를 본다’는, 즉 ‘미래에서 현재를 생각한다는 것’이고, Forecast는 익히 알려진 것처럼 ‘예언하다’, ‘예상하다’의 의미이다. 이 가운데, 리더와 경영자에게 필요한 자질은 'Forecast'보다 오히려 'Backcast'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래를 이미지화해서 비전을 만들고, 그 비전에 따라 미래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전기는 계통을 통해서 품질의 좋고 나쁨 뿐만 아니라 공급에도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책임감 있는 공급주체가 안정공급의 기초를 확보해야 하는 것은 물론 지속적으로 사회적 비용과 리스크를 고려해 나가면서 수요측면과의 연대를 도모해 나가는 것이 최우선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