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2월 미국 워싱턴 DC 출장 중 조지타운대에 구경을 갔다가 구내 서점에서 재미있는 책 한권을 구입했다. 사회 초년생과 전직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입사필승전략에 관한 책이다.

그 책에는 1000가지의 예상 질문과 해결방안이 제시되어 있는 데,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장이 “자신이 있는 것에는 자신이 있다고 말하고, 자신이 없는 것에는 솔직 담백하게 자신이 없다고 대답하라.” 역시 미국식 대인관계 생활방식이 기본이 된 책이다.

최근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영어책을 보다가 이와 유사한 문장을 접했다. “한국인들은 입사관련 인터뷰를 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겸손하고, 모르는 것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과장된 말을 한다”는 다국적 회사 인사담당자가 쓴 경험담이다. 그러면서 그는 “어느 경력사원이 입사할 때 중국어를 잘 한다고 해서 중국바이어와 상담을 하는 자리에 그 직원을 데리고 갔었는데 영 아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성에 문제가 있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회사에서 퇴직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잘 알고 있고, 잘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표현하는 편이다. 그리고 잘 모르거나 경험이 많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모른다고 표현한다. 그 대신 즉시 답을 해줘야 하는 사안이 아닌 경우에는 최대한 노력해서 짧은 시간에 해결방안을 찾아보겠노라 응대한다. 그런 나의 태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대단히 많다. 대한국민의 생활 행태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겸손과 겸양을 미덕으로 삼고 있는 우리의 관습에서 볼 때 그다지 친숙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다.

나의 이런 행태가 근간이 되어서인지는 모르겠으되, 회의에서든 일상적인 대화에서든 들릴 듯 말 듯 말하거나, 알면서도 알고 있다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인지 들릴 듯 말 듯 말하는 사람을 보면 정말 답답해한다.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설령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신뢰감이 가지 않는다. 아는 것은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상대방에게 자신을 정확하게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처럼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절대 비난을 받거나 잘난 척 한다고 왕따 당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매사 확실하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로부터는 결코 긍정적인 대답을 듣지 못하리라는 생각이다.

몇 주전 어느 신문에서 “내가 승진하는 데 도움이 된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기사에 의하면. 직장인들 대부분은 본인의 승진에 선배가 가장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며 가장 얄미운 후배는 어떤 형일까”라는 질문에는, “시키는 대로만 하고 스스로 생각을 안 하는 후배”란다. 또한 “이상적인 선배의 모습으로서는 후배가 역량을 발휘하도록 지원하는 선배라”는 것이다.

선배의 입장에서 자신감이 결여된 후배를 승진대상자로 추천해 주고 싶겠는가. 겸손하기가 이루 비할 데 없어도, 끊고 맺는 것이 분명치 않고 비전도 없고 리더십도 없는 선배라면 후배들이 과연 좋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우리와 서구의 문화 차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겸손이 미덕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지나친 겸손이 무능으로 오해받아 귀중한 취업기회를 잃게 된다면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고 하지 않던가. 글로벌 시대, 세계화 시대에 언제 어느 때 우리의 진로가 바뀔지 모르는 시대에, 지나친 겸손과 순간의 과장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